텍스트
메인이미지

설교동영상주님의음성교회

아이콘 HOME > 설교동영상 > 설교동영상

첨부파일 첨부파일 :   회개가 맞습니까 2.hwp    

회개가 맞습니까 2 (마 4:17)

회개가 맞습니까 2

(마 4:17, 개정)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3. 예수님의 회개
(눅 19:1-2, 개정)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의 사회적 위치와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임을 강조

(눅 19:8-9, 개정)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삭개오의 회개: 죄의 자복으로 그치지 않고 회개의 삶으로 돌아섰음을 고백
→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구원의 자격이 있음을 선언

(요 19:38-39, 개정)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확실하게 돌아서는 회개

(눅 7:37-38, 개정)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옥합을 손에 쥐고 살던 인생에서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회개의 행동

삭개오
(눅 19:5-7, 개정)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 자신을 품어주시는 예수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사랑

요셉과 바디메오
(요 19:38-39, 개정)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 이들을 비겁하다며 비방하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사랑으로 품어 주셨던 예수님
→ 이전에 경험 못한 사랑을 생각할 때 새 무덤과 비싼 향품을 내어놓을 수 있었다.

옥합 깨트린 여인
(눅 7:39, 현대인)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파 사람은 이것을 보고 `만일 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라는 것쯤은 알 텐데. 이 여자는 죄인이 아닌가!'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눅 7:41-43, 개정)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눅 7:46-47, 개정)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 비방 대신 죄 사함의 사랑을 받았고 이 사랑이 크기에 옥합을 깨트려 회개를 표현
→ 죄 사함의 사랑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삶을 돌이키지 않음
적게(ὀλίγος): 적은, 잠시, 잠간

이들의 공통점: 예수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깨달았던 것
자복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결핍
→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회개로 이끌어 준다 → 회개의 본질

4. 누가복음 15장의 회개
(눅 15:11-13, 개정) 『[11]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 아버지에 대한 모독
→ 사람에게 도를 넘는 불로소득은 독이 된다.

(눅 15:14-16, 개정)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 쥐엄 열매라도 있으면 머물고자 하는 것이 인간

(눅 15:17-19, 개정)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아버지를 생각
→ 죄의 자복 → 이 자복이 진정한 회개일까? NO 당장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함
죄를 인정하고 아버지께 돌아갔다는 자체는 본질적 의미의 회개가 아니다(교회출석, 기도, 봉사...)

(눅 15:20, 개정)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을 먼저 알아본 아버지: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
측은히 여겨: 분노가 아닌 사랑으로 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
→ 아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환대

(눅 15:21-24, 개정)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 탕자를 아들로 영접, 아들의 지위를 회복,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아버지
→ 아들의 모든 허물을 덮어 주고 즐거워하는 아버지
→ 아버지의 사랑으로 아들은 더 이상 재물이 아닌 아버지의 바른 아들로 살았을 것

사람마다 교회를 찾는 동기가 있을 것: 건강, 경제적인 문제, 종교적인 심성...
나를 죄와 죽음에서 살리시고 부끄러운 인생을 참으시고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깨닫기 전까지 회개의 삶은 불가능하다.

(요 19:30, 개정)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일 4:9, 개정)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 4:16, 개정)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이 1:6, 개정)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벧전 1:8, 현대인)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나 사랑하고 있으며 지금도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믿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복이 아닌 회개의 삶으로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결론
(고전 16:22, 개정)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