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사도행전의 연결고리
(요 21:1, 개정)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1. 믿음의 사람은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
‘그 후에’
(요 20:19, 개정)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26, 개정)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부활하신 자신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찾아가시는 모습
(요 21:1, 개정)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디베랴 호수: 분봉왕 헤롯이 갈릴리 서쪽에 도시를 건설하고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붙였고 도시 앞에 있는 갈릴리 호수를 티베리우스 호수라고 불렀다.
→ 황제의 호수(정복자의 명칭)라는 의미, 그러나 일반 유대인들은 갈릴리 호수라고 불렀음
(요 6:1, 킹흠정)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 사람들이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함 →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주실 것이라 생각 → 예수님은 사람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산으로 기도하러 가심
→ 주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요한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 욕망의 호수에 빠져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갈릴리 호수를 디베랴로 기록한 것이다.
요한이 21장에서 갈릴리를 다시 디베랴로 기록한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욕망의 세상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왜 강조할까?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욕망의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
(요 12:13, 개정)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할 분이라는 기대감으로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
(눅 19:41, 개정)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 머지않아 멸망당할 예루살렘 사람들의 미래를 보시고 눈물지으심
→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욕망의 노예로 살면 결과는 허망하게 끝난다.
(요 6:27, 개정)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2. 믿음을 가지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요 21:3, 개정)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고기를 잡던 어부의 삶으로 돌아가는 제자들 → 과거 자신들에게 익숙한 욕망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 아무 것도 잡지 못하는 헛된 그물질
→ 은혜를 경험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욕망의 그물질로 돌아가면 빈손으로 남게 된다.
(벧전 1:14, 쉬운) 『전에는 몰라서 하고 싶은 대로 악한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로서 예전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악한 일: evil desires
(고전 9:24-25, 개정)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 다시 욕망대로 살면 썩을 면류관
→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살면 썩지 않을 면류관
(딤후 4:7-8, 개정)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요 21:2-3, 개정)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7명의 제자들 → 이들을 충동질한 것은 베드로
a. 내가 누군가를 욕망의 바다로 끌어가지 않는가?
b. 내가 따르는 누군가가 나를 욕망의 바다로 끌고 가지 않는가?
(행 13:49-50, 개정)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임
유대인들이 충동질 → 충동된 사람들은 지역의 상류층 사람들
→ 자신들의 욕망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
(마 15:14, 개정)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디베랴 바다에서 빈 그물질을 하고 있다면 누군가를 선동하는 맹인이거나 선동당하는 맹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요 8:14, 개정)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 여러분의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3. 지금 함께 하시는 주님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
(요 21:4, 개정)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 예수님이 서 계신 시제는 과거형
→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제는 현재형
→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물질을 하던 순간부터 아무것도 잡지 못한 새벽까지 지켜보고 계셨음을 의미
a. 부활의 주님은 지금 내 인생을 바라보시며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다.
b. 지금이라도 함께 하시는 주님에 대해 깨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 신앙의 성숙은 지금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에 대해 깨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출 3:14, 개정)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I am who I am.
→ 시제는 모두 현재형,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삶 속에 현재형으로 계시는 분
(계 1:8, 쉬운)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며, 또한 마지막이다. 나는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창 11:4-5, 쉬운) 『[4] 그들이 또 서로 말했습니다. “자, 우리의 성을 세우자. 그리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 그래서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쌓고 있는 성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습니다.』
→ 지금 하나님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면 결국 자기 탐욕에 빠지고 만다.
(창 12:1,4, 쉬운)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나라와 네 친척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4]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란을 떠났습니다. 롯도 아브람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 때에 아브람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 어디로 갈지는 몰라도 떠날 용기를 가진 것은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
(시 23:4, 개정)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for you are with me.’
→ 다윗은 하나님이 지금 함께 하시며 나를 위로하시는 은혜가 있기에 인생의 음침한 골짜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엡 3:17, 개정)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 믿음으로 지금 내 마음에 계신 주님에 대해 깨어 있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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