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고독한 사람이 되어라
(요 21:21-22, 개정) 『[21]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1. 홀로 가는 길
(왕상 19:10, 개정)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 영적 전쟁의 승리, 바알과 아세라 섬기는 선지자들을 섬멸, 삼년간 가뭄이 그치고 비가 내림, 그럼에도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는 순간 믿음을 고수하는 사람은 자기 혼자라는 고백
(왕상 19:14, 개정)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 19:18, 현대인) 『내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아직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그 우상에게 입을 맞추지 않은 사람 7,000명을 남겨 두었다.』
→ 하나님은 7000이나 남겨 놓으셨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엘리야가 7000명과 연대하여 이세벨 무리를 섬멸하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7000명이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도 알리지 않으셨고, 엘리야 혼자 남은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다.
→ 우리의 신앙 여정에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 홀로 씨름하며 나를 일으켜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 1:3-4, 현대인) 『[3] 느부갓네살왕은 궁중 대신 아스부나스에게 명령하여 이스라엘의 포로 가운데 왕족과 귀족 출신으로 [4] 신체적인 결함이 없고 잘생겼으며 지능 지수가 높고 다방면의 지식을 가졌고 이해력이 빠르고 왕궁에서 섬길 자격이 있는 소년들을 데려오게 하여 그들에게 바빌로니아말과 학문을 가르치게 하였다.』
(겔 1:2-3, 개정)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다니엘의 활동 시기: B.C. 605-535년
에스겔의 활동 시기: B.C. 593-571년
동일한 시기에 다니엘은 왕궁에서 활동하였고, 에스겔은 유대인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는 그발 강 유역에서 활동하였다.
둘이 함께 했으면 유대인 포로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리에서 각자의 소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 예수님의 사역
- 따르는 군중들(산헤드린 의원, 부자, 회당장, 로마의 백부장)과 연대하였으면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압도하는 세력이 되지 않았을까?
* 예수님의 제자
로마의 탄압에 시달리는 제자들이 서로 연대하였으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주님은 각자의 소명지로 흩어지게 하여 모두 순교로 최후를 맞았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인간은 어느 사람과 ‘연대’하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 연대’의 힘을 더 의지하기 때문이다.
→ 혼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다.
(사 31:1, 쉬운) 『이집트로 내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들은 말을 의지하고 수많은 전차와 강한 기병대를 믿으면서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이집트와 연대하는 이유: 눈에 보이는 말과 전차와 기병대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이집트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신다.
(마 26:53, 개정)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 예수님은 천사들과 연대할 수 있지만 연대하지 않으셨다.
→ 천사들과 연대하셨더라면 십자가의 구원자가 되실 수 없었을 것이다.
<믿음의 길은 홀로 가는 것이다>
: 은혜를 받고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주님만 의지하면서 갈 수 있어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 믿음의 사람은 자발적으로 고독해야 한다.
외로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데에서 오는 소외감
고독: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지만 자발적으로 격리하는 것
→ 신앙 안에서의 고독은 하나님과 독대하기 위한 자기 격리이다.
2. 고독한 사람
믿음의 길에는 내가 내려야 하는 수많은 결단과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
자신을 꺾는 순종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의 힘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에서 나온다.
(행 20:23-24, 개정)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각 성: 베뢰아, 데살로니가, 빌립보, 네압볼리, 드로아
→ 성령님은 바울이 각 성들을 거칠 때마다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계속 예고해 주셨다.
보통은 피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다.
(행 20:13, 개정)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우리: 누가와 마게도냐, 아가야 지역 교회 대표들(7명)
출발지: 드로아, 도착지: 앗소
→ 일행은 배를 타고 먼저 앗소에 가고 홀로 걸어오는 바울을 기다렸다.
정하다(διατάσσω, 디아탓소): 명령하다, 지시하다
→ 바울은 자신은 걸어서 가고 일행들은 배 타고 가라고 명령한 것
→ 바울의 명령에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고 앗소로 가고 바울은 혼자 걸어서 앗소로 갔다.
왜 그랬을까?
성령이 예루살렘에 고난과 환란이 있다고 알려주셨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없었다.
바울이 걷기로 결정한 것은 고독하게 하나님과 독대하기 위한 자발적인 자기 격리였다.
드로아에서 앗소의 거리는 65km – 사흘 길
→ 바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은혜를 구하며 밤을 보냈을 것이다.
→ 자발적인 고독의 시간이었다.
→ 하나님의 감동이 있었어도 이를 삶에 실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삶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고독한 독대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감동 → 갈등 → 결단)
(행 20:22-24, 개정)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1:4, 쉬운) 『우리는 두로에서 신자들을 만나 일 주일을 그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알려 주신 대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행 21:10-12, 쉬운) 『[10] 우리가 여러 날, 그 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유대에서 내려왔습니다. [11] 그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묶고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이 이 허리띠 임자를 이와 같이 묶어서 이방인들에게 넘겨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 우리는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함께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행 21:13-14, 현대인) 『[13] 그러나 바울은 `왜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시오? 나는 주 예수님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묶이는 것뿐만 아니라 죽는 것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4]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으므로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서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 바울은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자기 격리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은혜를 입었기에 모두가 말리는 길을 거침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 예수님의 고독
(눅 22:41-42, 개정)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제자들과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신 것이 아니다.
→ 오직 하나님과 독대하시기 위해 자신을 격리하시는 기도였다.
→ 쓴잔을 기꺼이 마시기 위해 고독한 시간을 가지셨고, 그 결과 비참한 십자가 죽음의 쓴잔을 온몸으로 마실 수 있었다.
(막 8:34, 개정)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14:27, 개정)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①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에서 진리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다.
② 십자가의 길은 손해와 억울함이 있고 때로는 고난의 쓴잔도 마시는 길이다.
③ 자발적인 고독의 시간 없이 어떻게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마 14:22-23, 개정)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막 1:35, 개정)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눅 5:16, 개정)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6:12, 개정)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 예수님의 사역 비밀은 하나님을 독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격리하는 고독이었다.
→ 제자들의 배신, 사람들의 조롱, 수치, 무죄한 죽음 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론
(마 16:27, 개정)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 신앙은 개인적이며 독립적인 것, 가는 길, 짊어진 무게가 다 다르다.
→ 하나님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살았는지 보신다.
(마 6:6, 현대인)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 스스로 자신을 격리하여 고독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기도이다.
믿음의 사람입니까?
하나님 앞에 고독한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영성은 자신을 격리하는 고독의 자리에서 깊이와 넓이를 더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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