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점
(요 1:42, 개정)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베드로
(눅 5:10-11, 개정)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 베드로는 처음에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갔다가, 누가복음 5장에서 제자로 헌신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보기에 예수님이 메시아로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베드로는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 안드레가 사람 잘못 봤다고 생각한 것이다.
→ 우리도 예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지만 즉시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 베드로처럼 신앙의 전환점이 필요하다.
(눅 5:3, 개정)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 말씀을 가르치심
→ 믿음은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눅 5:4, 개정)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눅 5:5, 개정)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말씀에 의지하여: 자신의 경험이 아닌 생명의 말씀을 부여잡는 마음
그물을 내리리이다: 피곤한 육체, 어부로서의 경험과 자존심을 내려놓는 결단
→ 순종은 말씀하시는 분에 대한 신뢰로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눅 5:6, 개정)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렇게 하니: 내 생각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을 하니
순종의 결과: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힘
→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눅 5:8, 개정)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을 참회하는 것
→ 예수님 앞에 허물뿐인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 예수님 앞에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 신앙의 전환점이 된다.
(눅 5:11, 개정)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 나다나엘
(요 1:45, 개정)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2-1 나다나엘의 편견
(요 1:46, 개정)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나사렛: 갈릴리 지역 작은 마을이고 내세울 만한 인물을 배출해 본 적이 없는 빈민가이다.
→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리가 없다.(나다나엘의 편견)
와서 보라: 직접 예수님을 경험하면 모든 의심이 사라질 것이다.
→ 우리가 예수님을 소개할 때는 복잡한 설명보다도 말씀을 직접 경험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 4:28-30, 개정)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 4:40-42, 개정)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2-2 예수님의 통찰
(요 1:47, 개정)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참으로(ἀληθῶς, 알레토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진실한
간사(δόλος, 돌로스): 미끼, 계략 – 이익을 취하려는 이중적 마음
→ 예수님은 나다나엘 안에 거짓됨이 없는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을 보셨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보다 중심을 보신다.
→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내면의 정직한 모습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
→ 사람에게 보여지는 모습보다 하나님 앞에 진실한 사람이 되라.
(삼상 16:7, 개정)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요 1:48, 개정)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예수님의 깊은 영적인 통찰 앞에서의 경외함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 홀로 가지고 있던 시간에
무화과 나무 아래: 유대인들이 기도와 묵상의 장소로 사용
→ 나다나엘이 홀로 기도하거나 성경을 묵상하고 있었던 것을 예수님은 보셨고 알고 계셨다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나는 무화과나무 아래, 즉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가?
→ 신앙은 하나님 앞에 은밀하고 고독한 시간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
② 예수님께서 나의 삶을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사는가?
→ 예수님은 아무도 모르는 내면의 눈물을 아시고, 고민을 아시고, 생각을 알고 계신다.
(마 6:6, 개정)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시 139:1-2, 쉬운) 『[1] 여호와여, 주께서 지금까지 나를 살피셨으니 주는 나를 알고 계십니다. [2] 주는 내가 언제 앉고, 언제 일어서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주는 멀리서도 나의 생각들을 아십니다.』
2-3 나다나엘의 고백
(요 1:49, 개정)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랍비여: 선생님이시여
→ 예수님을 향한 의심에서 깊은 존경의 마음으로 부르는 것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
→ 예수님을 이 세상의 구세주임을 고백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영원한 통치자
⇒ 나다나엘은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주님의 통찰력을 경험한 후, 삶의 중심이 주님께로 옮겨졌고, 이 순간부터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요1:45-49이 주는 교훈>
① 나다나엘처럼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 있다.
② 나다나엘은 논리로 설득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통찰을 직접 경험하며 변화가 되었다.
③ 우리도 말씀과 기도 가운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진정한 믿음의 삶이 시작된다.
→ 누구든지 믿어지지 않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자기중심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으로 교회를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접하는 어느 날 은혜로 이끌림을 받으면 나다나엘처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2-4 더 큰 일을 보리라
(요 1:50, 개정)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랑의 실체를 보았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는 부활의 능력을 보았으며, 육신을 입으신 채로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처음엔 작은 감동과 체험으로 믿음이 시작되지만, 예수님은 믿음의 깊이를 확장시키신다.
→ 믿음은 계속 자라야 하며, 믿음이 성숙하여질수록 우리는 더 큰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 믿음의 궁극적 목적은 구원을 보는 것이다.
(벧전 1:9, 개정)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결국(τέλος, 텔로스): 목표, 목적
결론
(요 1:49-50, 개정)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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