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요 7:19-20, 개정)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형식적 신앙
(요 7:19, 개정)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① 너희들은 율법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느냐?
② 율법의 본질을 잊고 살아간다.
→ 율법을 지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있다.
→ 유대인의 형식적 신앙에 대한 지적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제사장은 성전에서 제물을 잡는 일을 하였다.
왜 하나님은 제사장의 일은 허락하셨을까?
제사를 통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시기 위해서이다.
할례는 안식일에도 허락되었다. 왜 하나님이 허락하셨을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이기 때문이다.
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인간에게 쉼이 필요하기에 인간을 사랑하셔서 주신 말씀이다.
→ 율법의 본질은 사랑이다.
(요 7:22, 쉬운)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다. 그러나 사실 그 할례는 모세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안식일에도 사람들에게 할례를 베푸는 것이다.』
(요 7:23, 쉬운)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람이 안식일에 할례를 받는데, 내가 안식일에 온몸을 건강하게 해 주었다고 해서 어찌 내게 화를 내느냐?』
→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낫게 하신 것이다.
→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이 오히려 율법의 본질에 맞는 것이다.
⇒ 유대인들은 형식에 치중했으나 본질은 놓치고 있었다.
(요 7:24, 개정)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외모: 겉모양
→ 안식일에 일했다고 죄인으로 여기지 말라
공의롭게: 율법의 본질을 기준삼아
→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지 생각하라
(마 12:1-2, 개정) 『[1]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마 12:7, 개정)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는 사랑이다.
(호 6:6, 쉬운) 『내가 바라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이며,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 하나님은 제사와 번제라는 형식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 알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신앙인에게 형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형식은 내용을 담기 위한 그릇이다.
② 신앙생활의 내용은 사랑이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기 위함이다.
말씀은 왜 읽는가?
→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기 위해서다.
기도는 왜 하는가?
→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찬양은 왜 하는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곡조에 담아 올려드리기 위해서다.
⇒ 기독교 신앙의 모든 행위의 본질은 사랑이다.
(마 9:13, 개정)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고전 13:1-3, 개정)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2. 말씀을 듣고도 변화가 없는 사람들
(요 7:25-26, 현대인) 『[25] 그때 어떤 예루살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당국에서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냐? [26] 이 사람이 터놓고 말해도 그들이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을 보니 지도자들도 이 사람을 진짜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 혹시 이 사람이 그리스도일까?
→ 예루살렘 사람들의 혼란
(요 7:27, 현대인)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 사람이 난 곳을 알고 있지 않은가?'』
→ 예수가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
⇒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의 틀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왜 자기 생각과 경험을 말씀보다 더 신뢰할까?
① 익숙한 삶의 방식을 버리기 싫기 때문이다.
② 자기중심성을 포기하기 싫기 때문이다.
③ 욕망을 내려놓기 싫기 때문이다.
(요 1:5, 개정)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3:19, 개정)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 빛이 옳은 것은 알지만 어둠의 욕망에 빠져 있으면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요 4:13-14, 개정)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다시 목마른 세상의 물에 만족하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실 수 없다.
(요 6:26-27, 개정)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 세상이 주는 것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영생을 위한 사람이 될 수 없다.
⇒ 결국 믿지 못하는 이유는 영원한 생명보다 지금 세상이 내게 주는 유익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창 3:6, 개정)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불신앙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욕망을 우선시하는 순간이다.
(롬 1:21-22, 쉬운) 『[21]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하나님으로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헛된 것을 생각했으며,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22]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리석습니다.』
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만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간다.
② 사람들은 세상의 유익을 쫓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③ 하나님의 눈으로 보자면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알아도 삶의 욕망을 우선시한다면 말씀은 나를 구원하는 진리가 되지 못한다.
결론
(마 22:37-40, 개정)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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