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요 9:6-7, 개정)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1. 진흙을 이겨 바르신 예수님
(요 9:6, 개정)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왜 이렇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맹인과의 인격적 만남을 원하셨기 때문이다.
→ 맹인은 주님의 숨소리를 듣고, 진흙을 이기시는 손놀림을 느끼고, 자신의 눈에 발라주시는 손끝의 접촉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졌을 것이다.
→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다정한 음성에 맹인은 정죄만 하던 사람들에게 느껴보지 못한 사랑과 존중을 경험했을 것이다.
<인격적인 만남이 무엇일까?>
사람의 인격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인격은 다른 인격과의 만남, 사귐을 통해 변화가 되어진다.
잘못된 만남은 인생을 무너뜨리지만 좋은 만남은 사람을 새롭게 한다.
어떤 만남이 좋은 인격적 만남일까?
좋은 만남은 많은 말을 나누는 것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많은 것을 주고받는 것도 아니다.
오직 사랑과 신뢰가 있는 사귐이 있을 때 우리의 인격은 새로워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랑을 내가 지성으로 깨닫고, 그 사랑에 감동하며, 의지로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인격적 만남을 가진 사람이다.
(눅 19:5-6, 개정)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 삭개오의 외로움과 가난함 마음을 아시고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
→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과 이름을 불러주시는 음성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신뢰하게 된다.
(요 20:27-28, 개정)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예수님이 의심하는 도마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계심을 확인시키시는 모습
→ 도마는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신뢰하는 순간
→ 도마가 3년 반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고백
(행 9:4-5, 개정)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 박해하는 바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 이후 바울은 오직 예수님을 신뢰하는 인생으로 변화된다.
(요 10:3, 개정)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시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주신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예수님은 우리와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② 여러분은 예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랑으로 만나고 신뢰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2.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요 9:7, 개정)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실로암 못: 예루살렘의 남동쪽 끝, 기혼 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 예루살렘에서 가장 낮은 곳
→ 맹인은 진흙을 눈에 바른 채 실로암 못에 내려가서 무릎을 꿇고 씻어야 했다.
→ 예수님은 맹인에게 가장 낮은 마음의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예수님을 만난 은혜가 신앙의 끝인가? 여전히 자기 고집과 교만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영적 맹인일 수 있다.
② 예수님은 영적 맹인에게 ‘실로암으로 가라’ 즉 ‘낮은 마음의 사람이 되라‘고 명령하신다.
→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낮은 마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 영적으로 밝은 눈의 사람이 되려면 낮은 마음을 가져야 할까?
예수님은 말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죽으셨다. 그렇기에 주님을 만났어도 높은 마음(교만)으로는 주님을 뵐 수 없고, 낮은 마음(겸손)을 가지면 주님을 뵐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사귈 수 있다.
2-1 은혜에 가난한 마음
(마 11:29, 개정)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겸손(ταπεινός, 타페이노스): 낮은, 가난한, 약한
(마 5:3, 개정)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시 123:2-3, 개정)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낮은 마음의 사람이다.
2-2 섬기는 마음
(마 20:28, 개정)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예수님은 인간을 섬기기 위해 낮은 자리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 낮은 마음은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마음이다.
→ 섬김은 스스로 낮은 자리를 택하는 것이다.
⇒ 남을 섬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실로암 못으로 향하는 사람이다.
(빌 2:3-4, 쉬운) 『[3] 무슨 일을 할 때, 이기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 주십시오. [4]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 낮은 마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일이다.
(갈 5:13, 개정)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3.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 9:7, 개정)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맹인을 만난 곳은 성전 주변이고, 실로암 못까지의 거리는 대략 600-900m 정도
맹인이 진흙을 바른 채 걷기에는 매우 먼 거리이다.(20-30분 거리)
→ 자신의 눈이 뜰 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실로암으로 향했다.
→ 순종의 힘은 자신을 정죄하지 않고 다가오신 예수님의 사랑이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진흙도 아니고 실로암의 물도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여 실로암 못까지 걸어간 순종이었다.
→ 오늘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종교적 의무감이 아니라 나를 찾아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순종의 삶이다.
(고후 5:14-15, 개정)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강권하다(συνέχω, 수네코): 둘러싸서 밀어내다, 사로잡다
→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붙잡고 있어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랑
→ 주를 위해 순종하는 이유는 오직 나를 붙잡고 있는 사랑 때문이다.
(갈 2:20, 개정)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사랑의 힘이 남은 인생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한다.
→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랑의 힘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결론
(요 9:6-7, 개정)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낮은 자리를 택하며 주님의 사랑에 이끌려 끝까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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