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입은 사람과 사랑이 없는 사람
(요 9:8-9, 개정)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1.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변화
(요 9:8-9, 개정)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 맹인을 보고 ‘맞다’ ‘아니다’ 하며 다투는 모습
→ 내가 바로 구걸하던 맹인이다.
→ 예수님을 만난 이후 맹인은 새로워져 있었다.
(요 9:10-11, 개정)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 예수님이 나를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이렇게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예수님을 만나면 주변을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
→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것이고,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 이후 주님을 따르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내 인격을 내려놓는 것이다.
→ 이전과 다른 주님의 인격이 드러나므로 주변이 당황하게 된다.
(고후 5:17, 개정)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καινός κτίσις, 카이노스 크티시스): 새로운 창조
→ 내 안에 없던 ‘사랑’이 부어진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 이전에 없던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도다.
(고전 13:4-7, 개정)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사랑은 평화를 이루고 분열과 갈등을 봉합해 준다.
→ 사랑이 없는 곳에는 반드시 분열이 있고, 사랑이 결여된 사람은 형식과 껍데기의 추종자가 되고 만다.
인간이 스스로 이런 사랑을 마음에 만들어 낼 수 있을까? NO
→ 인간의 마음에는 이기적 욕망만 가득할 뿐, 아무리 노력해도 이러한 사랑을 가질 수 없다.
→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그 사랑을 힘입어 사랑할 수 있다.
(롬 5:5, 개정)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확신하게 하신다.
(롬 5:8, 개정)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 된 나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
(요 16:13-14, 개정) 『[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내 영광: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 핵심은 십자가
내 것: 예수님께 속한 모든 구원의 진리
→ 성령님은 진리를 통하여 십자가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하신다.
2. 사랑이 없는 사람들
2-1 바리새인들
(요 9:13-14, 개정)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 맹인이 앞을 보게 된 사건에 대하여 종교 지도자들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한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었다.
(요 9:16, 킹흠정) 『그러므로 바리새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르되, 이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에게서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다른 이들은 이르되, 죄인인 사람이 어떻게 그런 기적들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가운데 분열이 생기니라.』
→ 사람들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기쁨과 축하보다는 안식일 날 왜 사람을 낫게 했는지 트집을 잡는다.
→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형식과 껍데기에 매달리게 된다.(형식주의자)
(마 12:7, 개정)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 안식일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고 쉼을 주는 것이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날 일하면 안 된다는 형식을 문제 삼았다.
→ 사랑이 없는 신앙은 사람보다 규칙과 형식을 앞세운다.
(고전 8:1, 현대인)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할 뿐 덕을 세우는 것은 사랑입니다.』
2-2 맹인의 부모
(요 9:18-19, 개정)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요 9:20-21, 개정)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요 9:22, 개정)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 부모는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이 예수님임을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출교’라는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출교: 성전 출입이 금지, 공동체에서 고립,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고, 죽으면 곡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요 9:23, 개정)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 자녀가 눈을 뜨게 된 기쁨보다 출교를 두려워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부모의 모습
→ 왜냐하면 자녀가 눈을 뜨는 기적은 경험했지만, 직접적으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사랑이 없으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사랑이 없으면 손해 앞에 침묵할 수 있다.
예) 직장, 가족, 세상 사람들 앞에서...
→ 사람들의 평가, 무시, 비웃음...
→ 사랑이 경험된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진리의 고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마 26:74-75, 개정)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요 21:17, 개정)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행 4:18-20, 개정)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요일 4:18, 개정)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믿음으로 사느라 겪게 되는 두려움을 이겨낸다.
(롬 1:16, 개정)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결론
(요 9:10-11, 개정)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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