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가 잠들었도다
(요 11:11-14, 개정)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 잠들었도다
(요 11:11, 개정)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
→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잠들었다고 표현하신다.
→ 사람에게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다.
→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보신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
→ 죽은자를 살리러 가노라
→ 나는 죽음을 다스리는 생명의 주권자이다.
(요 11:12-13, 개정)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요 11:14, 개정)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 나사로는 죽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잠에서 깨울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잠’으로 표현한다.
→ 성도에게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는 잠이다.
→ 불신자에게 죽음은 심판의 부활을 기다리는 상태이다.
(단 12:2, 개정)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사 26:19, 쉬운) 『주의 백성이 죽었으나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 시체들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먼지 가운데 누워 있는 사람들아, 일어나라, 그리고 기뻐하라. 이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무덤 속에서 잠자는 사람들에게 이슬같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살전 4:13, 개정)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성도의 죽음 앞에 소망 없는 사람처럼 슬퍼하지 말라
(계 14:13, 개정)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② 우리를 잠에서 깨워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 우리가 죽음 앞에서 소망을 가지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이다.
(요 11:25,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고전 15:20, 개정)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부활하는 근거이다.
(살전 4:14, 개정)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죽은 성도들도 주님의 재림 때 부활한다.
(요 6:40, 현대인)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2. 죽으러 가자
(요 11:15-16, 개정)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믿게 될 것을 기뻐하시며 나사로에게로 가자고 하셨다.
→ 도마는 예수님이 유대로 가시면 죽음의 위협을 당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다.
→ 도마는 주님과 함께 죽을 각오를 표현한 것이다.
(마 26:56, 개정)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 도마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주를 위해 죽겠다던 자신이 살길을 찾아 도망친 후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비겁한 자신에게 절망스럽고 새털처럼 가벼운 자신의 고백이 부끄럽지 않았을까?
(요 20:27, 개정)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예수님은 도마에게 못 박히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내어주신다.
→ 예수님은 배반했고 의심했던 도마에게 사랑을 베푸신 것이다.
→ 사랑을 베푸신 목적은 실패한 도마가 믿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후 도마는 인도로 건너가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 순교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에는 토마스 그리스도인(Thomas Christian)이란 이름으로 교회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 즉, 도마는 마침내 믿는 자가 되어 주를 위해 죽는 자가 되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처음부터 바른 신앙인이 되지 않는다.
②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에게 절망을 하게 된다.
→ 벗어나기 힘든 죄의 멍에와 반복적인 욕망에 패배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
③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는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 그러므로 자기 내면에서 솟구친 절망은 예수님을 만나는 접촉점이며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발판이 된다.
(롬 7:19-21, 쉬운) 『[19] 나는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20]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있다면, 그 일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살고 있는 죄입니다. [21] 그러므로 나는 이런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은 나에게 있지만, 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 바울은 회심 후 21-24년이 지났어도 죄에 연약한 내면을 고백한다.
(롬 7:24, 쉬운) 『나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 내겠습니까?』
→ 바울은 죄의 본성에 무너지는 자신을 비참한 사람이고 표현한다.
→ 바울은 자기 절망이 컸던 사람
(롬 7:25, 개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 바울은 절망의 자리에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깊이 깨닫게 된다.
(롬 8:35-37, 쉬운)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아니면 어려움입니까? 핍박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아니면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하루 종일 주님을 위해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붙잡는 힘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고백한다.
(갈 6:14, 현대인)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드신다’는 사실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