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17-21, 개정)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1. 마르다의 고백
(요 11:21, 개정)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 마르다는 예수님이 나사로의 죽음을 막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고 있었다.
→ 예수님이 여기 계시지 않아서 오라버니는 죽었습니다.
(요 11:22, 개정)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안다(εἴδω, 에이도): 본다
→ 희미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의미
→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께 구하면 응답을 받으시는 분인 줄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 나사로는 죽었지만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요 11:23-24, 개정)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 예수님은 지금 나사로를 살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 마르다는 마지막 날 살아날 미래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요 11:25,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과 생명의 근원이심을 밝히신다.
→ 나를 믿는 사람은 죽었어도 부활의 생명이 있다.
(요 11:26, 개정)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나를 믿는 사람은 육체의 죽음과 상관없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
→ 내가 네 오라버니를 살리는 생명의 주관자인 것을 믿느냐?
(요 11:27, 개정)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주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 마르다의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
(요 11:39,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 이제 내가 나사로를 살리겠다.
→ 이성적인 한계에 갇히지 말고 자신을 신뢰할 것을 요구하심
→ 주님이 죽은자를 살리시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르다는 주님의 능력을 안다고 확신했었고, 또한 주님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힘주어 고백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믿음은 아니었다.
마르다의 안다는 ‘앎’과 믿는다는 ‘믿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 성경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을 자신의 믿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그러나 말씀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갈 6:7, 현대인)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지 않는 사람
→ 성도는 말씀을 따라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갈 6:8, 현대인)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그 육체에서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님을 위해 심는 사람은 성령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 말씀을 알되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선택하고 사는 사람
→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사람
(약 1:14-16, 개정)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어도 자신의 욕심을 선택하면 결국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 될 수 있다.
→ 자신의 욕심에 끌려가면서도 그것을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약 1:22, 개정)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② 주님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원하신다.
→ 내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신뢰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6)’
‘내가 믿나이다(11:27)’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11:39)’
(요 11:40,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생명의 주관자임을 믿는다면
→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너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나를 이성적 범위에서 제한하고 있느냐?
(눅 8:41-42, 개정) 『[41]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 야이로는 예수님이 오시면 죽어가는 딸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눅 8:49-50, 개정) 『[49]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 병들었던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지 말라
→ 상황은 달라졌지만 흔들리지 말고 나를 신뢰해라.
(눅 8:52-53, 개정)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 어려운 상황에도 주님을 신뢰하려고 하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수 있다.
⇒ 주님을 향한 신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반드시 있다.
(눅 8:54-56, 개정)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 야이로는 자신의 딸이 살아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주님이 어떻게 하실지 알 수 없지만 상황을 주님께 맡겼을 뿐이다.
→ 주님을 신뢰하였을 때 하나님의 일을 경험한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를 내가 미리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출 14:13-14, 개정)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잠 3:5-6, 개정)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고후 5:7, 쉬운)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 성도는 보이는 현실을 기준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 성도는 보이는 현실이 이해하기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결론
(요 11:40,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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